[앵커멘트]
오월 광주에서 가장 주목 받는 곳.
바로 국립 5.18 민주묘집니다.
특히, 올해도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
추모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.
조은애 기잡니다.
[리포트]
문건양 씨는 오늘도 아들의 비석 앞에서 떠날 줄 모릅니다.
그의 일과는 아침부터 저녁까지
5.18 민주묘지에 잠든 아들 곁을 지키는 겁니다.
허기를 달래줄 빵 두어개와
물과 음료수는 어느 덧 필수가 됐습니다.
1980년 5월 27일, 최후의 항전지였던 구 도청.
끝까지 싸우던 시민군은 계엄군의 총에 전원 희생됐습니다.
거기에 당시 17살이던 문씨의 아들
문재학 열사가 있었습니다.
37년이 지났지만, 문건양씨는
아직도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.
문건양 / 故문재학 열사 아버지·광주5.18민주유공자회 부회장
"국민학교 동창 양창근이 죽어서 아직 처리가 안 되고 있는데
(아들이) 나 혼자 살겠다고 가겠냐고, 처리된 것을 보고 가겠다고
그렇게 말하기에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, 친구 간에 의리가 있다고 (여겼는데)
계엄군이 총으로 쏠 지 모르고요. (그때) 못 데리고 나온 것이 얼마나 (안타깝고...)
묘역 한 켠에는 봉분없이 비석만 세워둔 곳이 있습니다.
난리 속에 시체도 찾을 수 없었던 행방불명자의 묘역입니다.
그 가운데, 8살의 짧은 생을 마감한
고 이창현 군의 비석도 있습니다.
이귀복 / 故이창현 군 아버지·광주5.18행방불명가족회 전 회장
"저는 행방불명자 유족이에요. 유골을 못 찾았으니까.
사람만 없어져 버리고 유골을 못 찾았어요."
지난 9년 동안 집중된 5.18 왜곡은
유족들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또 한 번 안겼습니다.
하지만 새 정부 들어,
5.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위상도 바뀌고 있습니다.
이귀복 / 故 이창현 군 아버지·광주5.18행방불명가족회 전 회장
"기대감이 있지요. (대통령이) 오면 잘 해주지 않겠느냐.
5.18은 역사의 기록이니 무엇이든 틀리면 안 됩니다.
그때 당시 현실을 그대로 살려서 (보존)해주시면 좋겠습니다."
시민들의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
최근 5.18 민주묘지 참배객도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.
최정길 / 국립5.18민주묘지 관리소장
"역대 최고로 추모행렬이 오고 있습니다.
지난 주말에만 16만 5천 명이 왔고요.
이런 추세라면 5월에는 30만 명이 올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."
전주에 사는 안춘자 씨도 일하러 왔다가
잠시 5.18 민주묘지를 찾았습니다.
안춘자 /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
"너무 속이 상하네요. 내 자식이 그런 것 같고.
전부 다 와서 보니까 젊은 사람들이잖아요.
초등학교 교사 송진영 씨도 제자들과 함께 이곳을 왔습니다.
송진영 / 광주방림초 교사
"'정말 가슴 아픈 일이구나' '웃고 넘길 일이 아니구나'
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알게 됐던 것 같습니다."
학생들도 5.18 정신을 배우는 좋은 계기가 됐습니다.
김여원 / 광주방림초 6년
"도와주다가 죽었고, 신발 주으러 가다가 돌아가신 분들
(사연을 듣고) 인상 깊었어요."
김선효 / 광주방림초 6년
"그때 제가 있었으면 무서워서 집에만 있었을 것 같은데
나와서 민주화운동하신 분들이 존경스러워요."
김주원 / 광주방림초 6년
"5.18의 역사를 기억하고 널리 알려야할 것 같아요."
잊을 수 없는, 또 잊어서는 안되는 광주의 오월.
뜨거운 참배열기만큼, 실추된 명예 회복과
진실규명에 대한 기대감 또한 커지고 있습니다.
CMB뉴스, 조은애입니다.